최순실, 회고록에서….
사람들은 나를 '최순실'이라 부른다. 분명 나의 이름은 최서원이지만 사람들은 최순실이라는 이름 앞에 국정농단의 주범, 역사의 죄인, 심지어 무식한 강남 아줌마 등의 수식어를 붙여가며 나를 평가한다. 하지만 그들은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이 많다. 나는 알려지지 않은 사실과 진실, 나의 입장을 말하기 위해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
지금 밖에서는 법무부 장관 후보 조국의 끝없는 거짓말, 딸과 관련한 불법적인 것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그런데 '아니다, 모른다'로 일관하는 그들의 힘은 과연 어디서 나오는지 부럽기까지 하다.
이건 국정농단을 넘어 국정 장악이다. 그 놀라움에 내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왜 그렇게 버티질 못하고, 왜 딸이 그렇게 당하고 쇠고랑까지 차면서 덴마크 현재 한국대사관 직원의 협박 공갈에도 침묵하고 있었는지 가슴이 터질 것 같다.
조국은 기자들이 집 앞에 있어 딸이 무서워한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 부성애는 오로지 자기 딸에게만 해당하는 것일 뿐 다른 집 딸은 안중에도 없었다. 기가 막히게도 조국이 딸 걱정에 눈물 흘릴 때 우리 딸은 경찰을 동원한 세무서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한 나라의 대통령 위치에 있는 분 가까이에 있으니 내가 권력이나 명예를 좇는 사람이었다면 어떻게든 한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함께 지내는 가족도 없는 그분의 허전한 옆자리를 채워드려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 무렵부터 나는 가족들과도 소원해지기 시작했다.
정윤회 실장과도 수시로 갈등을 겪었다. 사실 내가 아버지 딸만 아니면 우리 부부 사이는 문제가 없었다. 그는 아버지와 박 대통령에 엮여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것을 극도로 꺼려 나에게 제발 박 대통령 곁을 떠나라며 여러 차례 권유했다.
박 대통령을 떠나자니 의리를 저버리는 것 같고, 그대로 있자니 세상이 그냥 놔두질 않을 것 같고, 그래서 나는 결국 그를 최태민의 사위에서 놓아주기로 했다. 그런데 정윤회라는 이름의 방패가 없어지니 최태민의 딸, 최순실이라는 이름이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아마 그때부터 나에 대한 의구심이 더욱 증폭됐고, 그것이 비극적인 내 운명의 시작이다. 당시에도 나는 청와대에 들어갈 때 투명 인간이 돼야 했고, 비서 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노출되지 않았다. 그분(박 전 대통령)이 그걸 싫어하셨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나의 개인사에 전혀 관심조차 없었다. 내가 뭘 먹고 사는지, 이혼했는지, 마음은 어떤지, 이런 건 대화의 소재가 되지도 않았다.
첫 여성 대통령이기에 성공적으로 임기를 마치시길 누구보다 많이 바랐는데, 반대파의 공격으로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내가 그분 곁을 떠났다면 훌륭한 대통령으로 임기를 마칠 수 있었을까. 진작 떠나지 못한 나 자신이 후회되고 한스럽다.
엄마를 보겠다며 일주일에도 몇 번씩 면회 오는 딸이 불쌍하다. 딸아이 앞에선 힘들다고 말할 수도, 몸이 아프다고 말할 수도 없다. 내가 힘든 모습을 보이면 금방 눈물을 흘리는 그 아이의 모습이 나를 더 괴롭히기 때문이다.